WHAT IF...? 워렌 버핏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 "안동의 현인" 원범필 SAGA : 비주류VC의 Exclusive Research Series
"오마하의 현인" 워렌버핏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거예요. 이 분이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사셨
2025. 9. 14.
WHAT IF...? 워렌 버핏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 "안동의 현인" 원범필 SAGA : 비주류VC의 Exclusive Research Series
"오마하의 현인" 워렌버핏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거예요. 이 분이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사셨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도 누구보다 빠르게 신선한 투자업계의 정보를 전달해 드리는 "비주류VC" 예요. 오늘은 "비주류VC의 Exclusive Research Series"로 찾아뵙게 되었어요.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이 만약 1930년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늘은 "안동의 현인 원범필(元範弼)"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오마하의 현인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아갔을지에 대해 가정해 볼께요.
元(으뜸) + 範(모범) + 弼(도움, 보필)로 "으뜸가는 모범으로 나라를 돕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이에요.
ps. 본 글은 "비주류VC"의 100% 뇌피셜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Source :
Warren Buffett Biography and Investment Philosophy (Forbes, 2024)
Korea Economic Development and Capital Market History (Bank of Korea, 2023)
Comparative Analysis of US vs Asian Capital Markets (McKinsey Global Institute, 2024)
Korean Chaebol System and Individual Investor Limitations (Harvard Business Review, 2023)
Q : 워렌 버핏이 한국에서 원범필로 태어났다면 똑같이 성공했을까요?
(Source : Gemini 생성)
결론부터 말하면 성공은 했겠지만 현재 부의 20~25% 수준에 그쳤을 것 같아요.
193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원범필"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에요. (여러분...워렌버핏의 재산은 한화로 약 180조원 이예요. 25%면 45조원인데 이 정도면 한국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인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회장이 보유한 약 13조원 재산에 5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예요... 워렌버핏 재산의 25%라고 해도 절대 작은 액수가 아니란 거죠...이미 원범필은 세계적인 부호 중 하나예요.)
하지만 버핏의 천재성을 그대로 원범필이 가졌다고 가정해도 한국의 시장 환경과 제도적 한계 때문에 개인 투자자로서의 성공은 제한적이었을 거예요.(45조원이...?)
필연적으로 한국 코스피와 코스닥에서 투자를 시작했을 것이고 초반 워렛 버핏의 투자행보로 보았을 때 굉장히 오랜 기간 장기투자를 했을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한국은 장기투자로는 적절하지 않은 시장인 것은 이미 알려 진 사실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을 것 같아요.
대신 국가 경제 설계자로서 더 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정말 많은 고민을 해봤는데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생각해 봤습니다...)
Q : 한국과 미국의 투자 환경이 그렇게 달랐나요?
(Source : Gemini 생성)
차이가 엄청나게 컸어요.
미국은 1950년대부터 개인 투자자도 대규모 자본을 운용할 수 있는 성숙한 시스템이 있었어요. 하지만 한국은 1998년까지 개인의 해외투자가 사실상 금지되어 있었고, 코카콜라, 애플, IBM 같은 글로벌 기업에 투자할 기회 자체가 없었죠.
시장 규모도 미국의 1/10 수준이었고요. 아무리 뛰어난 투자자라도 투자할 시장이 작으면 성공의 절대 규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그니까 45조원이...???)
Q : 그럼 한국에서 태어난 원범필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요?
(Source : Gemini 생성)
워렌 버핏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펜실베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제학과에 입학했었고 2년 후 네브래스카 대학교로 편입하여 경영학 학사를 취득했어요. 상대적으로 네임밸류가 떨어지는 네브래스카로 편입한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아버지의 모교로 옮겨 1년 만에 조기졸업을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예요.
이런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원범필도 분명히 서울대 상경계열을 최고 성적으로 졸업한 후 한국은행이나 경제기획원에 들어갔을 거예요. 1960~70년대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 설계자로 활동했을 것 같고요.
포항제철, 현대중공업 같은 국책사업의 자금조달을 담당하면서 "안동의 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을 거예요.(죄송합니다. 제 뇌피셜이...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개인 투자는 1980년대 금융 자유화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Q : 그래도 한국의 고성장기를 겪으면서 더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지 않았을까요?
(Source : Gemini 생성)
맞아요.
1960~80년대 한국의 연평균 GDP 성장률은 8~10%로 미국의 두 배 이상이었어요.
하지만 개인 투자자로서는 이런 성장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어려웠을 거예요. 5%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공시 의무가 있어서 조용한 매수가 불가능했고, 재벌 기업들의 복잡한 지배구조 때문에 소액주주로서 경영에 개입하기도 어려웠죠.
워렌버핏의 핵심 전략인 "대량 매수 → 경영 개입 → 장기 보유"가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했을 거예요.
그래서 원범필은 초장기 투자보다는 상대적으로 단기투자를 선호하는 성향이 생겼을 것이고 자신만의 투자 방법을 개발해 굉장한 부를 이루지 않았을까 싶어요.(그니까 45조원을…)
Q : 그럼 결국 시장 환경이 개인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인가요?
(Source : Gemini 생성)
이번에 리서치를 해보면서 수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히 그렇다"라고 답변해야할 것 같아요.
개인의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장과 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해요. 워렌 버핏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미국의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시스템과 성숙한 자본시장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반면 한국은 국가 주도 경제에서 개인의 역할이 제한적이었죠. 하지만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한국의 원범필은 개인 부자로서의 성공보다는 국가 경제 발전의 설계자로서 더 큰 사회적 임팩트를 남겼을 가능성이 높거든요. 그렇지 않았다면 수많은 소송에 지쳐서 단명(?)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워렌버핏의 투자적 성격은 단기적인 가격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지만 한국처럼 자본시장이 부침을 겪고 그로 인한 송사가 끊임 없었던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거든요. 대주주나 투자자들 대상으로 한 소송이 끊임없이 이어졌을 것이고 미국보다 터프한 노사 관계도 분명히 원범필의 투자 성향에 큰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오늘 배우게 된 점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께요.
시장 규모가 성공의 상한선을 결정함 아무리 뛰어난 투자 실력이 있어도 투자할 수 있는 시장의 절대적 크기가 성공 규모의 천장을 정해요.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에 투자할 수 있었던 건 미국 시장의 규모와 개방성 때문이에요. 한국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시장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업을 발굴해도 절대 수익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현재 한국 투자자들이 해외 투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제도와 규제가 투자 전략을 좌우함 투자 전략은 그 나라의 제도적 환경에 따라 달라져야 해요. 미국에서는 개인도 대량 지분을 취득해서 경영에 개입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공시 의무와 각종 규제로 인해 어려워요. 1998년 이전에는 해외 투자도 거의 불가능했고요. 투자자는 자신이 처한 제도적 환경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성공할 수 있어요. 규제를 탓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최적의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해요.
개인의 성공보다 사회적 임팩트가 클 수도 있음 한국에서 태어난 원범필은 개인 투자자로서의 성공보다는 국가 경제 발전의 핵심 인물로서 더 큰 족적을 남겼을 거예요. 경제개발 계획 수립, 중화학공업 육성, 금융 시스템 구축 등에서 말이에요. 때로는 개인의 부 축적보다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더 의미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해요. VC로서도 단순한 재무적 수익뿐만 아니라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는 관점을 고려했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랬어요.
환경 변화에 따른 기회의 재평가가 필요함 1960년대 한국과 현재는 완전히 다른 투자 환경이에요. 해외 투자 자유화, 정보 접근성 향상, 글로벌 시장 연결성 등 과거에 비해 훨씬 유리한 조건들이 많아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한국 투자자들은 과거의 제약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아요. 현재의 환경에서 가능한 새로운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특히 아시아 시장에 대한 정보 우위나 K-컬처의 글로벌 확산 같은 한국만의 고유한 강점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 이번 글을 작성하면서 한국의 금융 시스템이 굉장히 열악했었고, 반면 굉장히 빠르게 변화해 왔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워렌 버핏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개인적인 능력도 결국은 제도와 규제 앞에서는 100% 발휘될 수 없다는 게 제 결론이예요. 결국 VC로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개별 기업의 잠재력뿐만 아니라 그 기업이 속한 시장 환경과 제도적 맥락이에요. 글로벌 진출 가능성, 규제 변화 대응력,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죠. 앞으로는 단순한 재무 지표 분석을 넘어서 거시적 환경 변화를 읽는 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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